드라마 빅뱅이론

2010. 10. 22. 01:43 from 잡설


빅뱅이론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오타쿠 혹은 geek들이 등장한다. 단지 낄낄대면 되는 드라마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에 등장하는 geek들이 고학력자이며 물리학, 진화생물학, 등에 강박적이라는 것이다. 과학에 강박적인 geek들을 보며 낄낄거릴 수 있는 지점을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쿨'하다. 특히나 드라마의 오프닝 곡은 history of everything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목을 달고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빅뱅으로 인하여 시작되었다는 주제의 곡이다. 매 에피소드마다 나오는 이 오프닝곡으로 시청자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주입 교육을 받는 셈이다. 일견 무거운 주제다. 종교나 인문학자, 철학자들이 rationale 없이 헤집어 놓았고 아직 그 생채기가 아물지 않아 혼탁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빅뱅이론이나 진화생물학에 대한 논박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외려, 빅뱅이론은 당연하거니와 신경생리학적 해석을 바탕으로 인간관계를 맺으며 모든 대화는 논리에 기반한 geek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재미있는 일상이 전개될 뿐이다. 논쟁이 있을 수 있는 분야를 완전히 깔아뭉게 버리고 과학적 접근을 전제하는 가치관을 내세운다. 이 드라마의 백미는 '그럼에도' 어떻게 즐겁고 건강한 삶이 탄생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주의 탄생이 빅뱅에서 비롯되었고 유전자가 사람의 결정적 요소로 부각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횡행하는 종교적, 요술적, 전근대적 우주관은 설 자리가 없다. 덧붙인, '그럼에도'라는 수사가 타당한 것은 대개의 사람들은 이런 우주관을 잃으면 인간성을 상실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이 이 과학적 내용들을 과도하게 흥분하며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것을 우스꽝스럽게 그리기도 한다. 덤덤하게 받아들이든 그렇지 못하든 진리가 변하진 않는다는 투를 읽었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당연한 일로 '흥분하지 마라'라는 듯.

다시, 여전한 논쟁의 영역을 뒤로한 채 그 논점을 '전제'로 삼아 낄낄거릴 수 있는 지점을 탄생시켰고 그렇기에, 이 드라마는 '쿨'해진다. 최근 학계에서는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 빅뱅이론과 생명체의 탄생을 설명하는 진화생물학, 인간의 사고 과정을 설명하는 신경생리학이 그간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담당했던 분야를 잠식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 누구도 이런 과학적 공세를 피해갈 수 없다. 이 모든 사태는 결국 과학으로 통합된 학문 체계를 가리킨다. 따라서 드라마 빅뱅이론은 이 통합의 성패에 대한 '징후'다. 의과대학에 진학한 것이 다행스럽다. 첫 의도는 그렇지 않았지만 이로써 진리에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삶을 운위할 수 있는 행복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징후들은 나를 기쁘게 한다.
Posted by 김민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