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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3 08:59 from 의학

신경외과를 돌던 어느 주말, 새벽 1시. 교통사고 환자가 응급실로 왔다. 차트를 보니 환자는 만취한 상태로 6차선 대로 중앙에 누워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연락을 받고 수술방으로 갔다. 수술을 준비했다. 수술방에서 응급실 침대에 실려온 환자를 처음 보았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의식이 없었고 아무런 의학적 지식이 없는 자가 보더라도 심각한 상태로 보일 법 했다. 머리에 존재하는 구멍이란 모든 구멍에서는 피가 솟아나고 있었다. 응급수술이었다. 이비인후과 선생님께서 오셔서 귀의 출혈부를 패킹해주셨고 신경외과 펠로우 선생님께서 감압을 위한 두개절제술을 시행하겠다고 하셨다. 수술 준비를 마치니 새벽 1시 반. 짜증이 났다. 이미 잠을 못자 괴로운 상태에 이 두개절제술 들어갔다가 나오면 아침이 될 테고 그 다음 날 정규 스케쥴을 소화하면 초죽음이 될 것이다. 아침 7시 반에 시작된 두개절제술 수술 3건이 방금 끝났고 막 자려다 나온 터라, 나는 졸음과 피로감으로 훈제된 고깃덩이나 같은 상태였다.

 

3년 차 선생님께서 중심정맥관 삽관 기회를 주신 덕에 쇄골하정맥을 뚫는 순간의 손의 감각에 의기양양했던 것도, 환자의 코와 귀에서 약수물 마냥 흐르는 출혈에 놀란 것도 잠깐이었고 눈은 사정없이 감겼다.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내 눈꺼풀을 강하게 눌렀다. 수술방에서 레지던트, 펠로우 선생님과 함께 본 CT에서는 두개골 기저부 에도 많은 골절들이 있었고 경막 외 출혈, 경막 하 출혈, 뇌실질 내 출혈, 뇌부종 등의 소견이 있었다. 그럼에도 잠에 쫓기며 으레 수술받고선 중환자실에서 처치를 받다가 전원을 가든, 퇴원을 하든 하겠지, 하는 근거없이 무책임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웃음 많고 농담 잘하시던 선생님께서 “민섭아 오늘 테이블 데스가 어떤 건지 보여주마”라고 하실 때까지도 농담 치고는 조금 과한데? 라는 생각으로 무심결에 “네”하며 혼자만의 사투 - 잠과의 사투 - 를 벌이고 있던 나였다.

 

수술이 시작되었다. 펠로우 선생님께서 두피에 물음표 모양의 절개를 위한 선를 그리고 절개를 하기 시작했고 마취과 선생님께서는 몇 개가 달린 지 셀 수도 없이 복잡한 수액병과 수혈팩을 가지고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모습으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절개부에서는 피가 약숫물 처럼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내일 아침 회진을 도대체 어떻게 참석할 수 있을까, 내일 중환자실 시트, 아니, 당장 4시간 뒤 중환자실 시트는 언제 적지, 하는 생각만 하던 나도 갑자기 긴장이 되었다. 인공호흡기 위에 달린 모니터를 보니 혈압은 60/40이었다. 혈압은 잡힐 때도 있었고 잡히지 않을 때도 있었다. 온갖 경고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술은 진행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벌겋게 부푼 경막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께서 경막을 절개하자 피가 분수 처럼 솟았고 안경과 마스크를 적셨다. 마취과 스크린 너머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이 삑삑 거리는 소리가 계속 났다. 그때마다 신경외과 선생님은 마취과 선생님께 “어레스트 났나요”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하시며 긴장하고 계셨다.

 

‘진짜로 지금 환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구나.’

 

잠이 달아났다. 펠로우 선생님처럼 나도 덩달아 식은 땀을 흘렸다. 금세 그 절개된 경막 사이로 벌겋게 충혈된 뇌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강의 시간에 말로만 들었던 ‘angry brain’이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angry 라는 형용사를 참 잘 골랐다는 허튼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뇌가 경막 바깥에서 또아리를 틀면서 점점 커졌다. 핵폭발 직후의 버섯구름이 떠올랐다. 경막성형술은 엄두도 낼 수가 없었고 머리를 닫을 수 있지도 않았다. 몸이 달아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급박함에 얼굴로 온 몸의 피가 쏠리는 듯 했다. 펠로우 선생님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처를 하시는 동안 혼자서 bipoar coagulator를 들고선 여기저기를 지져댔다. 평소였으면 결코 하지도 못했을, 별 말씀이 없으셨다. 급박했다. 결국 펠로우 선생님도 경막성형술을 생략하신 채 두피를 닫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화가 날대로 난 뇌가 무서운 속도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뇌는 터졌고 뇌의 일부를 절제한 뒤 겨우 봉합한 봉합사 사이로 회색빛 뇌가 흘러내렸다. 그렇게 감압 목적의 두개절제술이 끝났다. 수축기 혈압은 70이었고 13팩이 혈액이 수혈되었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나니 아침 7시였다. 수술방에서 샤워를 하고선 감기는 눈으로 본관 3층 수술실에서 별관 4층 숙소로 슬리퍼를 끌면서 걸었다.

 

5시간 동안, 생사의 갈림길에, 죽음의 문턱에 들어선 어떤 무명의 생명에게 간곡하고 정중히, 동시에 큰소리로 외치며 그 죽음의 문을 얼마간이나마 열지 않도록 윽박지르듯 부탁하다 나온 기분이었다. 그가 그 부탁을 손사래를 치며 완강히 거절할 것이라는 것도 알지만.. 전자차트를 다시 열어보니 환자의 이름은 무명남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신상이 불명확하여 누군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술을 얼마나 마셨기에 신분증 하나 없이 6차선 대로 가운데서 머리가 다 터진 채로 있었을까. 가족들은 지금쯤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가장 걱정에 오늘은 유난히 과음을 한다고 걱정하다 잠들었을까. 아니면 오늘도 술을 먹는다며 화를 내다 잠들었을까. 어떤 사람이었을까.’ 걷다보니 ‘혹여나 승진이나 취직 소식에 술을 마시다 사고가 난 것은 아닐까.’ 하는 별 생각이 들었다. ‘동정과 연민은 상대의 인격을 짓밟는 행동이다. 자신의 자존심에 손상을 받지 않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염치와 체면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것이다. 만에 하나 이 무명남이 내 생각을 읽게 된다면 자존심 상해하지 않을까.’ 하는 황당한 사념도 들었다. 의식을 잃은 완전한 객체로서의 인간, 그 무명남은 단지 단백질로 구성된 항상성 유지 장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상실한 채 수술대에 누웠고 응급처치를 받았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기 위한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서의 의학에 기인한 것이다. 잠을 못 잔 통에 이유는 명확히 잘 생각해낼 수 없었지만 뭔가 역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또 동시에 어떤 드라마에서 의학은 본질이 뭐냐는 물음에 어떤 의사가 권력이라고 답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영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곧, 이 느낌은 의사되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치환되었다.

 

아침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자리에 누웠다. 수술방을 뛰어다니느라 굳은 살이 박혀가는 발만큼이나 감각의 역치를 높여가며 단단해지는 내 감정선의 변화가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오롯이 혼자만의 도취감일지라도 어쨌든 꽤 나쁘지는 않았던 밤이었다. 그건 언어로 풀어내려면 풀어낼 수도 있겠으나 굳이 풀어내고 싶지는 않은, 교활한 만족감이었다. 극도의 피로로 침윤해 있는 몸을 그런 은근한 만족감으로 휘감은 채 잠이 들었다. 이렇게 의사로서 수련을 하며 조금씩 ‘어른’이 되가는 거라고 자위하며.

 

ps. 병원에 '기억에 남는 환자 소감문' 제출하기 위하여 작성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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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민섭 트랙백 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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