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보호자

2010.10.21 20:48 from 의학
흉수(pleural effusion)라는 것이 있다. 폐 주변에 물이 차는 것이다. 이 증상이 생기면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여러가지 검사를 시행한다. 이 pleural effusion은 심부전, 간부전, 폐렴, 결핵, 폐암, 식도열공 등 엄청난 경우의 수의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원인을 알아내기가 힘들다. 현재 내과학 교과서(Harrison 내과학 17판)에는 흉수의 원인으로 28개의 질환군을 제시하고 있다.

실습을 돌며 보니 흉수(pleural effusion)으로 입원한 환자가 있었다. 내과 선생님들은 흉수(pleural effusion)가 생긴 경우의 원인 감별을 위한 검사 및 흉수를 없애기 위한 치료를 시행해 왔다. 그런데 회진 때 보호자가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주구장창 검사를 하면서도 원인은 모르고, 관을 박아놓고 물만 빼내더니 이제는 흉부외과로 가서 수술을 통해 원인을 알아내라고 한다는 것이다. 보호자는 자꾸만 이제 수술을 하면 원인을 알 수가 있는 것이냐, 이제껏 해놓은 게 무엇이냐, 등등을 따졌다.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 나는 보호자의 불만이 이해갔다. 의학적으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불만였으나 의학의 불확실성, 자체가 그 사람을 화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납득할 수 있었다. 많은 연구와 수차례의 반복적 검증을 거친 의학적 flow chart에 기반해, 가장 흔한 원인부터 환자에게 덜 고통을 가하는 검사 수단을 통해 배제해나가는 과정은 아주 논리적이다. 그러나 그 flow chart에서 덜 흔한 원인이 의심되어(의심했던 원인이 '꽝'으로 나와) 다음 검사를 시행하게 될 때는 이 보호자나 환자에게는 불안감이나 고통을 야기할 수도 있다. 매 단계, 확률적으로 획기적으로 적은 수의 환자가 다음 단계 검사로의 진행을 하겠고 또 그렇게 되도록 flow chart를 만들어 놓았겠지만 어쨌든 적은 수의 누군가는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환자가 드물겠지만, 그런 경우였다.

그런데 이 과정 전체를 환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여 진행하기도 힘들다. 환자가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제에 덧붙여, 불확실한 과정에 있다는 말을 건냈다가 의학적 '가능성'을 염두에 둔 진술이 실체적 사실과 '다를 경우'에 환자나 보호자가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으며 그 '불확실성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기도 한다. 이제껏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수단은 발전해왔다. 예컨대 망원경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우주를 전자파를 이용하여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사람의 몸에 대해서도 그렇다. 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타액, 혈액, 조직의 일부를 떼어낸 표본, 방사선에 대한 체내의 미세한 변화(X-ray, CT 등속)를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추론이 진리를 담보하지 못하며 이 과정을 통해 나온 결론이 실제 몸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다를 수 있고 다를 수 밖에 없다. 일례로, 비뇨기과 의사는 PSA라는 혈액의 염증 수치가 올라가면 전립선암을 의심하고 조직검사를 시행하게 된다. PSA는 전립선암에 대한 생물학적 지표로 알려져 있지만 대략 반절에서 이 수치의 상승은 '거짓 상승'이다. 피부에 싸여진 전립선을 눈으로 확인하고 또 그 전립선이 악성 세포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판단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이라도 이용하는 것이지만 그 만큼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흉수 역시 마찬가지 경우다. 사실 현재 의학이 많은 환자들에서 맑은 액체만 가지고선 흉수가 생기게 된 이유가 결핵인지, 암인지, 폐렴인지 등등의 원인이 알아내게 되었다는 것부터가 매우 신기한 일에 해당할 터이다.

보호자의 위협적 불만을 애써 받아주고 달래주던 주치의 선생님도 병실에서 나오고 나니 상당히 화가 많이 나 있는 것으로 보였다. 더 이상의 처치나 확실한 진단은 불가능하고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사기 행위에 불과하다. 흉수를 분석한 화학검사는 어떠한 질병도 시사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흉수가 자꾸 새어나오고 있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선생님들은 토의 끝에 어쩔 수 없이, 마지막으로 그 흉수를 생성하지 못하도록 수술을 시행하며 그 틈에 조직을 직접 떼어내어 육안, 현미경으로 확인하려 하고 있었다. 지금 그 제안에 대하여 보호자가 위협 섞인 불만을 제기했던 것이다. 누구든지 flow chart를 따라가며 사고하는 것은 힘이 든다. 불규칙적인 자연에 맞서 부자연스럽게 조직화된 사고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특히나 어려운 경우에 맞닥뜨렸는데그  노력의 결과로 돌아오는 것이 조롱과 위협이었으니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이런 필연적 균열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가 공유하는 의학적 지식을 환자에게도 이해시키고 납득을 시킨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 학생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흉수'라는 질병을 감별해내는 과정에 대하여 30분 이상 공부하거나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 보호자 보다는 확실히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면 환자나 보호자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끔 의학 지식들을 접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알 수 있었을까, 하는 감탄이 있을 때도 많지만 좀 더 쉽게 설명해준다면 일상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도 이 지식들을 이해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어떤 포털 사이트에서는 서울대 병원이 제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질환별 의학 지식을 제공한다. 확신하건데 아마도 많은 해당 질병의 환자들이 그 정보를 접하고서는 나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게 되었을 것이다. 암 환자가 왜 자신이 암에 걸렸는지 알아내지 못한다고 항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그 원인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흉수 환자도 왜 자신의 질병의 원인을 왜 재빨리 알아내지 못하냐고 항의하는 것도 극히 드물도록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 는 것이다.

5년 동안 의과대학을 다녔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흉수'라는 것에만 집중하자면 30분 분량의 지식 차이가 전혀 다른 입장을 만들어냈다. 사실 의학 지식은 의외로 많은 지식이나 논리성, 사고의 고도성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 경험적 사실의 나열이 많은 편이고 또 대개의 의학도들이 flow chart를 단순 암기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환자들은 '암기'할 필요조차 없으며 예후나 증상, 치료 옵션에 대하여만 알면 된다. 많은 경우, 의사-환자간의 오해가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의학적으로 월등한 방법이 없는데도 어려운 질환에 걸린 환자나 보호자는 지금, 병원에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하고 있는 문제가 의사의 성실성이나 실력 탓에 생긴 것이라 여기는 것. 본과 1학년 때 어떤 교수님께서 하신 농담이 생각난다.: "내가 어떤 사람들에게 명의라고 불리게 된 건, 대학 병원에 앉아서 다른 개업의사들이 이미 많은 질병을 배제해 놓은 상태에서 덧붙인 진단명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를 가장 마지막에 보도록 되어 있는 의사가 명의가 되는 것이다."
신고
Posted by 김민섭 트랙백 0 : 댓글 0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