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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23 객체 1
  2. 2010.10.21 어떤 보호자

객체

2012. 6. 23. 08:59 from 의학

신경외과를 돌던 어느 주말, 새벽 1시. 교통사고 환자가 응급실로 왔다. 차트를 보니 환자는 만취한 상태로 6차선 대로 중앙에 누워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연락을 받고 수술방으로 갔다. 수술을 준비했다. 수술방에서 응급실 침대에 실려온 환자를 처음 보았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의식이 없었고 아무런 의학적 지식이 없는 자가 보더라도 심각한 상태로 보일 법 했다. 머리에 존재하는 구멍이란 모든 구멍에서는 피가 솟아나고 있었다. 응급수술이었다. 이비인후과 선생님께서 오셔서 귀의 출혈부를 패킹해주셨고 신경외과 펠로우 선생님께서 감압을 위한 두개절제술을 시행하겠다고 하셨다. 수술 준비를 마치니 새벽 1시 반. 짜증이 났다. 이미 잠을 못자 괴로운 상태에 이 두개절제술 들어갔다가 나오면 아침이 될 테고 그 다음 날 정규 스케쥴을 소화하면 초죽음이 될 것이다. 아침 7시 반에 시작된 두개절제술 수술 3건이 방금 끝났고 막 자려다 나온 터라, 나는 졸음과 피로감으로 훈제된 고깃덩이나 같은 상태였다.

 

3년 차 선생님께서 중심정맥관 삽관 기회를 주신 덕에 쇄골하정맥을 뚫는 순간의 손의 감각에 의기양양했던 것도, 환자의 코와 귀에서 약수물 마냥 흐르는 출혈에 놀란 것도 잠깐이었고 눈은 사정없이 감겼다.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내 눈꺼풀을 강하게 눌렀다. 수술방에서 레지던트, 펠로우 선생님과 함께 본 CT에서는 두개골 기저부 에도 많은 골절들이 있었고 경막 외 출혈, 경막 하 출혈, 뇌실질 내 출혈, 뇌부종 등의 소견이 있었다. 그럼에도 잠에 쫓기며 으레 수술받고선 중환자실에서 처치를 받다가 전원을 가든, 퇴원을 하든 하겠지, 하는 근거없이 무책임한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웃음 많고 농담 잘하시던 선생님께서 “민섭아 오늘 테이블 데스가 어떤 건지 보여주마”라고 하실 때까지도 농담 치고는 조금 과한데? 라는 생각으로 무심결에 “네”하며 혼자만의 사투 - 잠과의 사투 - 를 벌이고 있던 나였다.

 

수술이 시작되었다. 펠로우 선생님께서 두피에 물음표 모양의 절개를 위한 선를 그리고 절개를 하기 시작했고 마취과 선생님께서는 몇 개가 달린 지 셀 수도 없이 복잡한 수액병과 수혈팩을 가지고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모습으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절개부에서는 피가 약숫물 처럼 흘러 나오고 있었다. 내일 아침 회진을 도대체 어떻게 참석할 수 있을까, 내일 중환자실 시트, 아니, 당장 4시간 뒤 중환자실 시트는 언제 적지, 하는 생각만 하던 나도 갑자기 긴장이 되었다. 인공호흡기 위에 달린 모니터를 보니 혈압은 60/40이었다. 혈압은 잡힐 때도 있었고 잡히지 않을 때도 있었다. 온갖 경고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술은 진행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벌겋게 부푼 경막이 눈에 들어왔다. 선생님께서 경막을 절개하자 피가 분수 처럼 솟았고 안경과 마스크를 적셨다. 마취과 스크린 너머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이 삑삑 거리는 소리가 계속 났다. 그때마다 신경외과 선생님은 마취과 선생님께 “어레스트 났나요”라는 질문을 반복해서 하시며 긴장하고 계셨다.

 

‘진짜로 지금 환자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구나.’

 

잠이 달아났다. 펠로우 선생님처럼 나도 덩달아 식은 땀을 흘렸다. 금세 그 절개된 경막 사이로 벌겋게 충혈된 뇌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강의 시간에 말로만 들었던 ‘angry brain’이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angry 라는 형용사를 참 잘 골랐다는 허튼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뇌가 경막 바깥에서 또아리를 틀면서 점점 커졌다. 핵폭발 직후의 버섯구름이 떠올랐다. 경막성형술은 엄두도 낼 수가 없었고 머리를 닫을 수 있지도 않았다. 몸이 달아올랐다. 눈앞에 펼쳐진 급박함에 얼굴로 온 몸의 피가 쏠리는 듯 했다. 펠로우 선생님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수처를 하시는 동안 혼자서 bipoar coagulator를 들고선 여기저기를 지져댔다. 평소였으면 결코 하지도 못했을, 별 말씀이 없으셨다. 급박했다. 결국 펠로우 선생님도 경막성형술을 생략하신 채 두피를 닫기 시작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화가 날대로 난 뇌가 무서운 속도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뇌는 터졌고 뇌의 일부를 절제한 뒤 겨우 봉합한 봉합사 사이로 회색빛 뇌가 흘러내렸다. 그렇게 감압 목적의 두개절제술이 끝났다. 수축기 혈압은 70이었고 13팩이 혈액이 수혈되었다.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나니 아침 7시였다. 수술방에서 샤워를 하고선 감기는 눈으로 본관 3층 수술실에서 별관 4층 숙소로 슬리퍼를 끌면서 걸었다.

 

5시간 동안, 생사의 갈림길에, 죽음의 문턱에 들어선 어떤 무명의 생명에게 간곡하고 정중히, 동시에 큰소리로 외치며 그 죽음의 문을 얼마간이나마 열지 않도록 윽박지르듯 부탁하다 나온 기분이었다. 그가 그 부탁을 손사래를 치며 완강히 거절할 것이라는 것도 알지만.. 전자차트를 다시 열어보니 환자의 이름은 무명남으로 기재되어 있었다. 신상이 불명확하여 누군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술을 얼마나 마셨기에 신분증 하나 없이 6차선 대로 가운데서 머리가 다 터진 채로 있었을까. 가족들은 지금쯤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가장 걱정에 오늘은 유난히 과음을 한다고 걱정하다 잠들었을까. 아니면 오늘도 술을 먹는다며 화를 내다 잠들었을까. 어떤 사람이었을까.’ 걷다보니 ‘혹여나 승진이나 취직 소식에 술을 마시다 사고가 난 것은 아닐까.’ 하는 별 생각이 들었다. ‘동정과 연민은 상대의 인격을 짓밟는 행동이다. 자신의 자존심에 손상을 받지 않는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염치와 체면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것이다. 만에 하나 이 무명남이 내 생각을 읽게 된다면 자존심 상해하지 않을까.’ 하는 황당한 사념도 들었다. 의식을 잃은 완전한 객체로서의 인간, 그 무명남은 단지 단백질로 구성된 항상성 유지 장치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상실한 채 수술대에 누웠고 응급처치를 받았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기 위한 가장 최후의 수단으로서의 의학에 기인한 것이다. 잠을 못 잔 통에 이유는 명확히 잘 생각해낼 수 없었지만 뭔가 역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또 동시에 어떤 드라마에서 의학은 본질이 뭐냐는 물음에 어떤 의사가 권력이라고 답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영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곧, 이 느낌은 의사되길 잘했다는 생각으로 치환되었다.

 

아침이었다. 숙소에 도착해 자리에 누웠다. 수술방을 뛰어다니느라 굳은 살이 박혀가는 발만큼이나 감각의 역치를 높여가며 단단해지는 내 감정선의 변화가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오롯이 혼자만의 도취감일지라도 어쨌든 꽤 나쁘지는 않았던 밤이었다. 그건 언어로 풀어내려면 풀어낼 수도 있겠으나 굳이 풀어내고 싶지는 않은, 교활한 만족감이었다. 극도의 피로로 침윤해 있는 몸을 그런 은근한 만족감으로 휘감은 채 잠이 들었다. 이렇게 의사로서 수련을 하며 조금씩 ‘어른’이 되가는 거라고 자위하며.

 

ps. 병원에 '기억에 남는 환자 소감문' 제출하기 위하여 작성한 글.

Posted by 김민섭 :

어떤 보호자

2010. 10. 21. 20:48 from 의학
흉수(pleural effusion)라는 것이 있다. 폐 주변에 물이 차는 것이다. 이 증상이 생기면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여러가지 검사를 시행한다. 이 pleural effusion은 심부전, 간부전, 폐렴, 결핵, 폐암, 식도열공 등 엄청난 경우의 수의 원인으로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원인을 알아내기가 힘들다. 현재 내과학 교과서(Harrison 내과학 17판)에는 흉수의 원인으로 28개의 질환군을 제시하고 있다.

실습을 돌며 보니 흉수(pleural effusion)으로 입원한 환자가 있었다. 내과 선생님들은 흉수(pleural effusion)가 생긴 경우의 원인 감별을 위한 검사 및 흉수를 없애기 위한 치료를 시행해 왔다. 그런데 회진 때 보호자가 무척 화가 나 있었다. 주구장창 검사를 하면서도 원인은 모르고, 관을 박아놓고 물만 빼내더니 이제는 흉부외과로 가서 수술을 통해 원인을 알아내라고 한다는 것이다. 보호자는 자꾸만 이제 수술을 하면 원인을 알 수가 있는 것이냐, 이제껏 해놓은 게 무엇이냐, 등등을 따졌다. 납득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 나는 보호자의 불만이 이해갔다. 의학적으로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불만였으나 의학의 불확실성, 자체가 그 사람을 화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납득할 수 있었다. 많은 연구와 수차례의 반복적 검증을 거친 의학적 flow chart에 기반해, 가장 흔한 원인부터 환자에게 덜 고통을 가하는 검사 수단을 통해 배제해나가는 과정은 아주 논리적이다. 그러나 그 flow chart에서 덜 흔한 원인이 의심되어(의심했던 원인이 '꽝'으로 나와) 다음 검사를 시행하게 될 때는 이 보호자나 환자에게는 불안감이나 고통을 야기할 수도 있다. 매 단계, 확률적으로 획기적으로 적은 수의 환자가 다음 단계 검사로의 진행을 하겠고 또 그렇게 되도록 flow chart를 만들어 놓았겠지만 어쨌든 적은 수의 누군가는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환자가 드물겠지만, 그런 경우였다.

그런데 이 과정 전체를 환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여 진행하기도 힘들다. 환자가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는 전제에 덧붙여, 불확실한 과정에 있다는 말을 건냈다가 의학적 '가능성'을 염두에 둔 진술이 실체적 사실과 '다를 경우'에 환자나 보호자가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으며 그 '불확실성 자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기도 한다. 이제껏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는 수단은 발전해왔다. 예컨대 망원경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우주를 전자파를 이용하여 관찰할 수 있게 한다. 사람의 몸에 대해서도 그렇다. 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타액, 혈액, 조직의 일부를 떼어낸 표본, 방사선에 대한 체내의 미세한 변화(X-ray, CT 등속)를 이용하여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추론이 진리를 담보하지 못하며 이 과정을 통해 나온 결론이 실제 몸 속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다를 수 있고 다를 수 밖에 없다. 일례로, 비뇨기과 의사는 PSA라는 혈액의 염증 수치가 올라가면 전립선암을 의심하고 조직검사를 시행하게 된다. PSA는 전립선암에 대한 생물학적 지표로 알려져 있지만 대략 반절에서 이 수치의 상승은 '거짓 상승'이다. 피부에 싸여진 전립선을 눈으로 확인하고 또 그 전립선이 악성 세포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판단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이라도 이용하는 것이지만 그 만큼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흉수 역시 마찬가지 경우다. 사실 현재 의학이 많은 환자들에서 맑은 액체만 가지고선 흉수가 생기게 된 이유가 결핵인지, 암인지, 폐렴인지 등등의 원인이 알아내게 되었다는 것부터가 매우 신기한 일에 해당할 터이다.

보호자의 위협적 불만을 애써 받아주고 달래주던 주치의 선생님도 병실에서 나오고 나니 상당히 화가 많이 나 있는 것으로 보였다. 더 이상의 처치나 확실한 진단은 불가능하고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것도 사기 행위에 불과하다. 흉수를 분석한 화학검사는 어떠한 질병도 시사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흉수가 자꾸 새어나오고 있었다.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선생님들은 토의 끝에 어쩔 수 없이, 마지막으로 그 흉수를 생성하지 못하도록 수술을 시행하며 그 틈에 조직을 직접 떼어내어 육안, 현미경으로 확인하려 하고 있었다. 지금 그 제안에 대하여 보호자가 위협 섞인 불만을 제기했던 것이다. 누구든지 flow chart를 따라가며 사고하는 것은 힘이 든다. 불규칙적인 자연에 맞서 부자연스럽게 조직화된 사고에 스트레스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특히나 어려운 경우에 맞닥뜨렸는데그  노력의 결과로 돌아오는 것이 조롱과 위협이었으니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해 보였다.

이런 필연적 균열을 피하기 위하여 우리가 공유하는 의학적 지식을 환자에게도 이해시키고 납득을 시킨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직 학생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흉수'라는 질병을 감별해내는 과정에 대하여 30분 이상 공부하거나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 보호자 보다는 확실히 더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면 환자나 보호자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끔 의학 지식들을 접하다 보면,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알 수 있었을까, 하는 감탄이 있을 때도 많지만 좀 더 쉽게 설명해준다면 일상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도 이 지식들을 이해할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어떤 포털 사이트에서는 서울대 병원이 제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질환별 의학 지식을 제공한다. 확신하건데 아마도 많은 해당 질병의 환자들이 그 정보를 접하고서는 나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게 되었을 것이다. 암 환자가 왜 자신이 암에 걸렸는지 알아내지 못한다고 항의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 것이다. 그 원인이 매우 다양하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흉수 환자도 왜 자신의 질병의 원인을 왜 재빨리 알아내지 못하냐고 항의하는 것도 극히 드물도록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 는 것이다.

5년 동안 의과대학을 다녔다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흉수'라는 것에만 집중하자면 30분 분량의 지식 차이가 전혀 다른 입장을 만들어냈다. 사실 의학 지식은 의외로 많은 지식이나 논리성, 사고의 고도성을 담보로 하지 않는다. 경험적 사실의 나열이 많은 편이고 또 대개의 의학도들이 flow chart를 단순 암기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환자들은 '암기'할 필요조차 없으며 예후나 증상, 치료 옵션에 대하여만 알면 된다. 많은 경우, 의사-환자간의 오해가 이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의학적으로 월등한 방법이 없는데도 어려운 질환에 걸린 환자나 보호자는 지금, 병원에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하고 있는 문제가 의사의 성실성이나 실력 탓에 생긴 것이라 여기는 것. 본과 1학년 때 어떤 교수님께서 하신 농담이 생각난다.: "내가 어떤 사람들에게 명의라고 불리게 된 건, 대학 병원에 앉아서 다른 개업의사들이 이미 많은 질병을 배제해 놓은 상태에서 덧붙인 진단명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환자를 가장 마지막에 보도록 되어 있는 의사가 명의가 되는 것이다."
Posted by 김민섭 :